"맞벌이 부모에게 도움 vs 교육 기관 부담 과중"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시길....
그 어느 때보다 재미 없는 감금의 3월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의원이 되어서 활동하다 보니 참여민주주의의 한계도 보게 된다. 의원이 되고 난 후 첫해에 과천에 승마와 캠핑장 사업을 벌이려는 시장과 반대하는 시민들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다. 졸속 사업이라 비판하는 시민들과 지역 단체들이 주말마다 거리에 나와 4천 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서 제출했다. 그러자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관변단체들이 8천 명 이상 서명을 제출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참여하는 시민의 대표성, 동원되거나 조작될 수 있는 참여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홍준표를 뺀 후보들의 공통 공약. 최저임금 1만원으로 월급 좀 올리고, 노동시간 줄여 저녁이 있는 삶을 느낄 수 있을까? 상시업무에 비정규직·하청 사용을 금지하고, 공동사용자 책임으로 알바노동자가 맥도날드나 씨유(CU)를 상대로 협상할 수 있을까? 촛불이 준 희망, 정치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청년들의 기대가 또다시 배신당하지는 않을까? 박근혜가 취임식 날 광화문에서 우체국 집배원에게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환하게 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배신의 정치가 촛불을 부른다는 걸 새겼으면 좋겠다.
"왜 운동선수가 더 뛰어난 성적을 위해 밤새 훈련하는 일은 칭찬받고 직장인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야근하는 일은 흠으로 볼까요?" O대표 내정자의 평소 지론이다. 운동선수도 계속해서 밤새 훈련을 하다 보면 본게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혹사만 시키다가 구조조정 당하거나 병에 걸려 회사를 나가면 회사가 책임져 줄 것이냔 말이다. 직원도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취미생활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업무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풀 필요도 있고, 자기계발을 할 필요도 있고, 멍 때리고 TV예능이나 볼 필요도 있다. 그러한 휴식시간이 모두 모였을 때, 다시 업무시간에 집중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어느 신부님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들겠다.' 라는 굳은 다짐이 담긴 문구였다. 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되돌아 본 나는 그저 그런 사축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하던 교육실습생은 동료교사들의 주당시수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버렸고 연간계획을 수십 차례 세우고 다시 고치고 하던 어린 초임교사는 방학날짜와 공휴일 숫자를 줄줄 외우고 있는 날짜 계산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2016 리우올림픽은 한국 선수들의 당당한 자기 선언의 첫 올림픽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극적인 역전을 이뤄 금맥을 캔 재기 발랄한 박상영뿐만 아니다. 태권도의 이대훈은 8강전 패배 뒤 상대 선수의 손을 번쩍 들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메달은 몇날 몇달이면 잊힌다. 내 삶의 경험으로 삼겠다"는 발언은 혁명적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얘기가 되려면 야근이 많다는 문제 이전에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이 먹힌다. 하지만 고용률은 좀체 늘지 못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축출되고 불량 일자리만 창출되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얻었어도 언제 잃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은 '먼 세상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청년은 특히 심각하다. 6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치였다. 17년 전이면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이다.
80만원으로 시작하는 시사교양프로그램 신입 작가의 한 달 급여는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그때는 식비나 야간 교통비라도 받았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단순히 일이 많고 힘들어서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는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방송업계로 뛰어드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부당한 업무 지시, 역할의 충돌과 갈등,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과로가 반복된다면 직업에 대한 열정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방송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값'이 낮을수록 콘텐츠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